2026년 3월 18일 개봉한 극장의 시간들은 이종필·윤가은·장건재 감독, 김대명·원슈타인·이수경 출연의 앤솔로지 드라마 영화입니다. 예술영화관 씨네큐브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티캐스트가 제작한 작품으로, 세 감독이 각자의 시선으로 극장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씨네큐브 25주년이 만든 영화
극장이 영화를 만든다는 게 조금 특이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보통은 영화가 먼저 있고 극장이 그걸 상영하는 순서이니까요. 그런데 극장의 시간들은 씨네큐브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씨네큐브를 운영하는 티캐스트가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영화입니다. 극장이 영화를 만들어서, 그 극장에서 상영하는 방식입니다. 그 구도 자체가 이 영화의 성격을 설명합니다.
씨네큐브는 서울 광화문에 있는 예술영화관입니다.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해 온 공간으로, 2000년 개관 이후 25년간 자리를 지켜온 곳입니다. 대형 멀티플렉스가 아닌 작고 조용한 극장이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떤 공간이었는지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발상이 출발점이 된 셈입니다. 그러니 이 영화는 완성된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보다 씨네큐브라는 장소가 품어온 것들을 기록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세 편의 단편을 묶은 앤솔로지 형식을 선택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자연스럽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로는 25년을 담을 수 없고, 극장을 채워온 다양한 시간들은 어떤 단일한 서사로도 다 포괄되지 않습니다. 세 감독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극장과 영화에 접근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구조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시네마 러브레터라는 표현이 이 영화를 설명하는 데 자주 쓰이는데, 그 표현이 틀리지 않습니다. 극장이 스스로를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발상이 조금 자기애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애정이 진심에서 나왔다는 건 영화를 보면 느껴집니다.
세 감독이 그린 세 편의 이야기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는 2000년 광화문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영화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으로 뭉친 고도, 모모, 제제 세 사람이 헌책방에서 침팬지 이야기를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리고 2025년, 영화감독이 된 고도가 혼자 광화문을 걷다가 그 이야기를 다시 만납니다. 25년의 시간이 두 장면 사이에 놓이는 구조입니다. 씨네큐브 개관 연도인 2000년을 단편의 시작점으로 삼은 것이 이 영화가 기념작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는 영화 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감독이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노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하라고 주문하고,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연기란 무엇인지 고민에 빠집니다. 윤가은 감독은 아동과 그들의 세계를 섬세하게 담아 온 감독인데, 이 단편에서도 그 시선이 살아 있습니다. 자연스러움을 요구받는 순간 자연스러움이 가장 어렵다는 역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풀어내는 방식이 단편 안에 잘 담겨 있습니다.
장건재 감독의 〈영화의 시간〉은 세 편 중 가장 직접적으로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다루는 단편입니다.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 어두운 공간 안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그 경험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세 단편이 독립적인 이야기를 가지면서도 공통의 소재인 극장과 영화를 중심으로 느슨하게 연결되는 구조가 앤솔로지 형식의 특성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하여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결국 극장이라는 공간의 의미입니다. 스트리밍이 보편화된 시대에 왜 극장에 가야 하는지, 왜 작은 예술영화관이 25년 동안 자리를 지켜왔는지. 이 영화는 그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공간에서 쌓인 시간들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극장은 혼자 가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가기도 하는 장소입니다. 같은 화면을 보면서 다른 걸 느끼는 사람들이 같은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곳입니다. 그 공간이 가진 고유한 경험은 화면 크기나 음향 때문만이 아닙니다. 영화를 보기 위해 그 자리에 앉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무언가가 있고, 극장의 시간들은 그 무언가를 포착하려 합니다.
리뷰들을 보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드라마틱한 감동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큰 사건이 없고 강한 서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야기보다 오래 남는 것이 있다는 평도 있습니다. 극장을 좋아하는 사람, 영화관에서 보낸 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건드리는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94분짜리 작은 영화이고, 그 94분이 극장이라는 공간에 바치는 시간으로서 충분합니다. 씨네큐브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씨네큐브에서 본다는 것도 이 영화를 경험하는 방식의 일부입니다. 어떤 영화는 그 영화를 보는 장소가 영화의 내용과 겹칠 때 더 선명하게 남습니다. OTT가 만연하는 시대에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해 한번쯤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