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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리아: 카를라 시몬, 마리나, 칸영화제

by 말그레75 2026. 6. 9.

2026년 5월 27일 개봉한 로메리아는 카를라 시몬 감독, 율루시아 가르시아·미치 마틴 주연의 스페인 드라마 영화입니다. 에이즈로 부모를 일찍 여읜 18살 마리나가 어머니의 일기를 손에 쥔 채 친가족을 찾아 대서양 연안 항구도시 비고로 떠나는 이야기를 담았으며, 제78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입니다.

로메리아 포스터

카를라 시몬, 자전적 서사의 세 번째 여름

카를라 시몬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감독을 아는 관객이라면 로메리아가 그냥 다음 작품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2017년 프리다의 그해 여름으로 장편 데뷔한 이후 2022년 알카라스의 여름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고, 로메리아가 그 뒤를 잇는 세 번째 작품입니다. 세 편 모두 감독의 자전적 서사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흐름이 로메리아에서도 이어집니다.
카를라 시몬의 영화에는 일관된 결이 있습니다. 카메라가 사람을 관찰하는 방식, 일상의 장면들이 쌓이면서 감정이 드러나는 속도, 극적인 사건보다 그 사이사이의 순간들을 더 오래 들여다보는 태도. 로메리아에서도 그 방식은 유지됩니다. 행정적인 절차로 시작된 여정이 오래 묻혀 있던 가족의 비밀을 건드리는 이야기인데, 그 비밀이 폭발하는 방식으로 터지지 않습니다. 일상의 표면 아래서 천천히 올라오는 방식입니다.
감독 자신의 삶이 출발점이 되는 이야기를 세 편 연달아 만든다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에는 그것을 얼마나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느냐의 문제가 따라붙고, 로메리아는 카를라 시몬이 자기 이야기와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기억과 꿈으로 빚어낸 시라는 표현이 이 영화를 설명하는 말로 쓰이는데, 그 표현이 이 감독의 방식을 잘 담고 있습니다.

마리나가 찾아간 것들

이 영화의 출발은 서류입니다. 대학에 제출할 공식 서류를 찾는 과정에서 마리나는 대서양 연안에 자신의 친가족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행정적인 필요가 여정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비고로 향하는 마리나의 손에는 어머니의 일기가 들려 있습니다. 서류보다 그 일기가 이 여정의 진짜 무게를 결정합니다.
마리나는 에이즈로 부모를 일찍 잃었습니다. 18살이고, 만나러 가는 친가족과는 오랜 시간 왕래가 없었습니다. 그 친척들은 마리나를 환영하는 듯하면서도 불편해합니다.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 무엇이 오랫동안 묻혀 있었는지가 영화가 서서히 풀어가는 부분입니다. 직접 설명하거나 고백하는 장면보다, 사람들 사이의 공기와 침묵과 눈빛으로 전달되는 방식입니다.
주연을 맡은 율루시아 가르시아가 마리나와 마리나의 친모 역을 함께 연기한다는 설정이 영화의 구조와 맞물립니다. 딸이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야기에서 한 배우가 두 인물을 동시에 담는 방식은 이 영화가 기억과 현재, 모녀의 삶을 어떻게 교차시키려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마리나가 비고에서 찾은 것이 단순히 행정 서류나 가족의 사실관계가 아니라는 것, 그 여정이 무엇을 향해 가는지를 이 설정이 미리 암시합니다. 어머니를 잃은 딸이 어머니가 살았던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어떤 감정을 건드리는지는, 영화가 끝난 뒤 조용히 남습니다. 마리나의 여정은 서류 한 장으로 시작했지만, 도착하는 곳은 다른 뎁니다.

칸영화제가 선택한 이유

제78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이라는 타이틀은 가볍지 않습니다. 카를라 시몬이 알카라스의 여름으로 베를린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이후 칸 경쟁 부문에서 다음 작품을 공개했다는 것은 이 감독에 대한 국제 영화계의 신뢰를 보여줍니다. 영화제 전문 매체 스크린인터내셔널은 예측 불가능한 가족의 얼굴을 포착해 내는 카를라 시몬의 독보적 재능이라고 평했고, 리얼리즘에서 한 걸음 벗어난 선택이 그녀의 최고작을 완성했다는 평도 나왔습니다.
다만 칸 현지 반응이 완전히 열광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스크린데일리 별점은 4점 만점에 2.7점으로 중위권이었습니다. 극장에서 검증된 감독의 신작이지만 이전작들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었고, 감독 특유의 느린 호흡이 이번 영화에서도 유지되는 만큼 관객의 취향에 따라 반응이 갈릴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한국 관객에게 의미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카를라 시몬의 삼부작을 따라온 관객이라면 이 세 번째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확인하고 싶을 것이고, 이 감독을 처음 만나는 관객에게도 로메리아는 충분한 입문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다루는 영화가 많지 않습니다. 비고의 풍경과 그 안에서 마리나가 만나는 사람들, 그 경험이 남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느끼고 싶다면 볼 만한 영화입니다. 잔잔하게 흐르지만 끝에 가서 뭔가 남는다는 느낌, 그게 이 감독의 영화를 찾아보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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