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7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 백룸은 케인 파슨스 감독, 추이텔 에지오포·레나테 레인스베 주연의 A24 공포 영화입니다. 인터넷 괴담에서 출발한 '백룸' 설정을 실사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출구 없는 공간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개봉 11일 만에 국내 누적 관객 70만 명을 돌파하며 올여름 극장가 다크호스로 급부상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시작한 케인 파슨스, 20세에 A24 감독이 되다
케인 파슨스 감독의 이력을 처음 접하면 잠깐 멈추게 됩니다. 2005년생, 영화 학교 한 번 간 적 없고, 코로나 시절 자기 방에서 3D 프로그램을 독학으로 익혀 열여섯 살에 유튜브에 9분짜리 페이크 다큐 영상을 올렸습니다. 그 영상이 백룸을 소재로 한 것이었고, 그게 A24의 눈에 띄어 정식 장편 영화 연출까지 이어졌습니다. 광역 개봉 영화감독 중 역대 최연소 기록입니다.
이 이야기가 단순한 성공 신화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이력이 납득이 됩니다. 케인 파슨스가 가진 가장 강한 능력은 공간을 설계하는 감각입니다. 카메라를 어디에 두어야 불안해지는지, 사운드를 어느 정도로 깔아야 사람이 예민해지는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오면서 몸으로 익힌 감각이라는 게 화면에서 느껴집니다.
세트 규모도 놀랍습니다. 먼저 블렌더로 공간 전체를 디지털로 설계하고, 그걸 기반으로 농구장 6개를 합쳐놓은 크기인 850평짜리 실물 세트를 지었습니다. 세트가 너무 커서 촬영 도중 스태프들이 안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는 이 영화가 어떤 규모로 만들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제작비 1000만 달러로 글로벌 흥행 수익 1억 1700만 달러를 거둔 A24 역대 최고 오프닝 성적은 그 결과입니다. 정규 교육 없이 독학으로 만들어낸 감각이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서도 유효하다는 걸 이 영화가 증명한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20세 감독이 만들었다고는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백룸이 만들어낸 공포, 익숙한 장소가 낯설어지는 방식
백룸 공포의 핵심은 귀신이 나오거나 무언가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방식이 아닙니다. 오래된 사무실 복도, 노란 형광등, 낡은 카펫. 이런 공간이 왜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불편합니다. 영화는 그 불편함을 정밀하게 건드립니다. 사운드 디자인이 특히 그렇습니다. 형광등 소리, 공간 특유의 잔향,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나는 소리들이 계속 쌓이면서 관객을 조금씩 불안하게 만들어갑니다.
1990년이라는 시대 배경도 이 공포와 잘 맞습니다. 디지털 기기도 없고, GPS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없는 환경에서 공간에 갇힌다는 설정입니다. 현대적인 배경이었다면 스마트폰 하나로 상황이 달라졌을 텐데, 아날로그 시대를 배경으로 삼음으로써 인물들의 고립이 훨씬 완전해집니다. 탈출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구조라는 게 영화 내내 체감됩니다. 이러한 설정들로 인해 영화를 보는 내내 몰입하다 보니 공포감이 배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관객 반응이 엇갈리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면이나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이 영화가 낯설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A24 공포 영화가 원래 그런 방향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백룸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친절한 설명보다 불쾌한 감각을 남기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비평가들이 치밀하게 설계된 시각적 불쾌감이라고 평한 것처럼, 보고 나서 상쾌함보다 뭔가 찜찜함이 남는 영화입니다.
한국에서 70만 관객, 이 영화가 통한 이유
백룸이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이 선택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개봉 5일 만에 30만, 8일 만에 50만, 11일 만에 70만을 돌파하며 같은 시기 개봉한 스타워즈 신작의 국내 성적을 넘어섰습니다. 최근 공포 영화 흥행작과 비교해도 30만 돌파 속도가 가장 빠른 수준이었습니다.
백룸이라는 소재 자체가 이미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친숙한 편이었다는 점이 한 요인입니다. 인터넷 괴담 문화가 익숙한 세대에게 이 설정은 설명 없이도 어느 정도 통합니다. 유튜브에서 시작한 영상이 A24 영화로 이어졌다는 감독의 이력 자체도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 관객층의 관심을 끌기 충분한 이야기였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임에도 입소문이 퍼진 건, 보고 나서 할 말이 생기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결말 해석, 엔티티의 정체, 공간의 의미 같은 것들이 관람 후에도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전형적인 공포 영화의 공식을 기대하고 들어가면 실망할 수 있지만, A24 스타일의 불친절한 공포에 익숙하거나 백룸이라는 설정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분명히 보고 나서 뭔가 남는 영화입니다. 오래된 형광등 아래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가 왜 그렇게 불편한지, 그 감각을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