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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의 SF 신작, 아야세 하루카와의 재회, 어린 왕자의 상자

by 말그레75 2026. 6. 13.

2026년 6월 10일 국내 개봉한 상자 속의 양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아야세 하루카 주연의 일본 SF 드라마 영화입니다. 교통사고로 7살 아들을 잃은 부부가 아이의 기억을 학습한 휴머노이드를 집에 들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제79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다이고, 쿠와키 리무가 함께 출연합니다.

상자 속의 양 포스터

고레에다가 SF를 쓴 이유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 영화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그의 영화에는 결핍된 가족, 잃어버린 관계, 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SF는 고레에다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영역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상자 속의 양을 보면 이 영화가 왜 SF 형식을 빌렸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영화의 출발점은 중국에서 실제로 운영 중인 AI 부활 서비스였습니다. 고인의 얼굴과 목소리, 사진과 영상 속 기억을 학습한 AI가 그 사람의 모습으로 남겨진 가족과 대화하는 서비스입니다. 고레에다는 그 뉴스를 보고 이 영화를 구상했습니다. 현실이 이미 SF가 된 시대에, 고레에다가 가장 잘 다루는 주제인 가족과 상실을 그 안에 놓으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그 질문이 이 영화의 시작입니다.

영화 속 회사 리버스는 죽은 이의 기억을 학습한 휴머노이드를 제공하는 업체입니다. 오토네와 켄스케 부부는 2년 전 교통사고로 잃은 7살 아들 카케루와 똑같이 생긴 휴머노이드를 집에 들입니다. 고레에다에게 SF는 장르적 흥미를 위한 선택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가능해진 질문들을 영화 언어로 다루기 위한 틀입니다. 고레에다의 칸 영화제 통산 10번째 초청이자 8번째 경쟁 부문 진출이라는 기록과 함께 이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8년 만의 오리지널 신작이라는 점도 이 영화를 기다려온 관객에게 각별합니다.

아야세 하루카와 다시 만든 가족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아야세 하루카는 2015년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한 번 함께 일했습니다. 네 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그 영화에서 아야세 하루카는 첫째 딸 사치를 연기했습니다. 가족의 형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 중심을 묵묵히 붙잡는 인물이었습니다. 10년 만의 재회에서 아야세 하루카는 다시 가족의 이야기 안에 서 있습니다. 이번엔 아이를 잃은 어머니 오토네입니다.

오토네는 아들을 잃은 후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상실 안에 멈춰 있습니다. 남편 켄스케와의 관계도 조용히 어긋나 있습니다. 두 사람은 말을 잃었고, 같은 집 안에 있지만 다른 속도로 슬픔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드론이 배달한 리버스의 브로셔 한 장이 집으로 옵니다. 아야세 하루카가 연기하는 오토네의 반응이 이 영화의 감정적 중심을 이룹니다.

아역배우 쿠와키 리무는 카케루이자 카케루의 기억을 학습한 휴머노이드를 동시에 연기합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에서 영화가 질문을 던집니다. 아야세 하루카의 연기는 그 질문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아내는 자리에 있습니다. 고레에다가 10년 만에 다시 아야세 하루카를 선택한 이유가 이 역할에 있습니다. 두 사람의 재회를 반기는 관객에게 이 영화는 단순한 SF가 아니라, 고레에다 특유의 가족 서사가 새로운 형식을 입고 돌아온 작품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어린 왕자의 상자

영화의 제목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왔습니다. 어린 왕자가 양을 원했을 때, 어른은 상자 하나를 그려주며 양이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어린 왕자는 그 말을 믿고 상자 속 양을 사랑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를 믿는 것. 고레에다는 그 이야기를 기술의 시대에 가져옵니다.

휴머노이드는 카케루의 모습을 하고, 카케루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카케루인가, 아닌가. 영화는 그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습니다. 오토네가 그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뿐입니다. 고레에다의 영화에서 가족은 늘 완전하지 않습니다. 핏줄이 아닌 사람들이 함께 살고, 빈자리를 채우는 방식이 각자 다릅니다. 상자 속의 양에서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휴머노이드라는 점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제79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선보인 이 영화는 국내에서 개봉 첫날 독립·예술 영화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가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고,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그 자리에서 각자에게 다르게 남습니다. 상자 안에 무엇이 있다고 믿을 것인지는 결국 보는 사람이 결정합니다. AI와 상실, 사랑과 기술이 뒤섞인 이 시대에 고레에다가 던지는 질문은 관람이 끝난 뒤에도 쉽게 닫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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