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7일 개봉한 엔조는 로뱅 캉피요 감독, 로랑 캉테 공동 각본의 프랑스 성장 드라마 영화입니다. 부모가 정한 미래에 회의를 품은 열여섯 소년 엔조가 이방인 블라드를 만나 처음 경험하는 설렘과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제78회 칸 영화제 감독 주간 개막작으로, 로랑 캉테의 유작이기도 합니다.

로뱅 캉피요가 완성한 영화
로뱅 캉피요는 2017년 BPM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감독입니다. 1980년대 에이즈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 영화에서 보여준 에너지와 감수성이 엔조에서도 이어집니다. 청춘, 몸, 욕망, 그리고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 캉피요의 영화가 반복해서 돌아오는 지점입니다.
엔조는 원래 로랑 캉테가 각본과 감독을 모두 맡으려 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로랑 캉테가 암 진단을 받은 후,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캉피요가 합류해 제작 전 과정에서 함께했습니다. 두 사람은 클래스(2008)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오랫동안 협업해 온 사이였고, 이번 영화는 그 우정의 마지막 결실이 됐습니다. 로랑 캉테가 2024년 세상을 떠나면서, 캉피요가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감독이 둘인 영화는 때로 방향이 어긋나거나 중심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엔조에서는 그런 느낌이 없다는 평이 많습니다. 두 사람이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와 서로의 방식에 대한 이해가 영화 안에 배어 있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방식을 설명합니다. 캉피요가 혼자 완성했지만, 영화는 두 사람의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BPM에서 에이즈와 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담았던 캉피요가, 이번엔 삶과 욕망의 출발점에 서 있는 소년을 담습니다. 두 영화의 온도가 다르지 않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원한다는 것을 카메라가 함께 느끼는 방식이 같습니다.
로랑 캉테가 남긴 것
로랑 캉테의 이름을 처음 들어도, 클래스라는 제목은 익숙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입니다. 파리 외곽 중학교를 배경으로 교사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 영화는 리얼리즘 드라마의 방식으로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성장을 포착했습니다. 캉테가 평생 관심을 가져온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 특히 권력의 불균형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이었습니다.
엔조의 각본에서도 그 시선이 작동합니다. 열여섯 소년이 부모가 정해놓은 미래 앞에서 느끼는 막막함, 그리고 어른들의 세계와 자신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 공간. 캉테가 직접 완성하지 못하고 떠났지만, 그가 쓴 이야기가 스크린에 살아 있습니다.
유작이라는 사실이 영화를 보는 감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가디언은 이 영화를 로랑 캉테가 세상에 남긴 품격 있는 유작이자 로뱅 캉피요가 빚어낸 또 다른 강렬한 작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유작이라는 무게를 의식하면서 보게 되는 영화이지만, 그 무게가 영화 자체를 짓누르지는 않습니다. 엔조라는 소년의 이야기가 그 무게를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클래스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사람 사이의 긴장을 포착했다면, 엔조는 한 소년의 여름을 통해 비슷한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묻습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하는 질문입니다.
열여섯 소년의 여름
열여섯이라는 나이는 애매한 자리입니다.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지만 아직 그 안에 완전히 속하지 않고,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것 같기도 한 나이입니다. 엔조는 그 자리에 있습니다. 부모가 정해준 경로가 있고, 그 경로를 따라가야 한다는 압력이 있지만, 그게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확신이 없습니다.
그런 엔조 앞에 블라드가 나타납니다. 이방인이고, 자유롭고, 엔조가 알던 세계와 다른 사람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감정은 영화가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 뜨거운 햇살과 여름의 공기, 두 사람이 나누는 시선과 침묵으로 전달됩니다. 버라이어티는 이 영화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고 평했는데, 그 감각이 어디서 오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장 영화는 많습니다. 그중에서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이유를 꼽자면, 두 감독이 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입니다. 판단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함께 있어주는 방식. 르 파리지앵이 섬세하고도 뜨거운 숨결로 완성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청춘의 얼굴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엔조는 그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칸 감독주간 개막작으로 선택받은 이유가 영화 안에 있습니다. 퀴어 성장 영화라는 분류에 묶어두기엔 이 영화가 건드리는 감정의 폭이 더 넓습니다. 열여섯 이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불확실함이 스크린 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