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이반리 장만옥: 이유진 감독의 장편 데뷔, 양말복이 만든 만옥, 이반리가 바뀌는 방식

by 말그레75 2026. 6. 14.

2026년 6월 개봉한 이반리 장만옥은 이유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양말복 주연의 한국 코미디 드라마 영화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 레즈비언 만옥이 서울에서 실패를 맛본 뒤 고향 이반리로 돌아와, 이장으로 군림하는 전남편에 맞서 이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관객상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차례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반리 장만옥 포스터

이유진 감독의 장편 데뷔

이유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사실과 이 영화가 거둔 성과를 같이 놓으면, 이게 얼마나 이례적인 경우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관객상, 제29회 토론토릴아시안영화제 관객상, 제2회 남도영화제 관객상, 그리고 제39회 BFI플레어: 런던LGBTQIA+영화제 베스트오브페스트. 첫 장편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연달아 관객상을 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중년 레즈비언, 농촌, 이장 선거. 이 조합을 들으면 무겁거나 심각한 영화를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유진 감독이 이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왁자하게 진행됩니다. 퀴어 서사를 비극이나 계몽으로 다루는 대신, 만옥이라는 인물이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그 접근이 관객에게 통했습니다. 영화제 관객상이 반복된 것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이유진 감독이 데뷔작에서 선택한 소재와 그것을 다루는 태도가 이 영화를 기억에 남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웃음을 앞세우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잃지 않는 방식. 코미디 형식 안에서 퀴어 서사가 이렇게 경쾌하게 펼쳐진 한국 장편 영화는 그전에 많지 않았습니다. 디아스포라영화제 초청까지 더해지면서 이유진 감독의 이름은 데뷔와 동시에 여러 공간에 알려졌습니다. 첫 작품이 이렇게 많은 관객과 만나는 일은 드뭅니다. 그 출발점이 어떤 이야기를 선택했느냐에 있다는 점이, 이유진 감독을 앞으로도 지켜보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양말복이 만든 만옥

장만옥은 이름입니다. 성이 장이고 이름이 만옥입니다. 영화 제목에 인물의 이름이 붙는 경우, 그 인물이 영화의 중심이라는 뜻입니다. 양말복이 연기하는 만옥은 중년 레즈비언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방식대로 살다가 서울에서 일이 잘 안 풀리자 고향인 이반리로 내려옵니다. 돌아온 고향에서 마주친 건 전남편이 이장으로 군림하는 풍경입니다.

만옥은 전남편의 불의에 맞서 이장 선거에 나섭니다. 이 결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그 선거 운동이 이반리라는 공간 안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가 영화의 주요 줄기입니다. 양말복은 이 인물을 비장하거나 비극적으로 연기하지 않습니다. 만옥은 자기 삶에 대해 당당하고, 필요하면 유쾌하게 맞섭니다. 그 태도가 영화를 무겁지 않게 만드는 동시에, 인물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냅니다.

농촌과 중년과 퀴어라는 세 가지 조합을 이렇게 경쾌하게 다룬 한국 영화가 그전에 없었다는 점에서, 양말복이 만들어낸 만옥이라는 인물 자체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 중 하나입니다. 웃음이 나면서도 그 뒤에 남는 무언가가 있는 연기. 관객이 만옥을 좋아하게 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양말복이라는 배우가 이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화면에 올려놓았는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자연스럽게 확인됩니다. 과하지 않으면서 존재감이 뚜렷한 연기. 만옥이 말을 줄이고 행동으로 나아가는 장면들에서 그 온도가 가장 잘 느껴집니다. 이반리 장만옥이라는 제목에서 이름 석 자가 들어간 이유가 있습니다.

이반리가 바뀌는 방식

이반리는 마을 이름입니다. 이 영화에서 이반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만옥이 떠났다가 돌아오는 곳이고, 만옥이 맞서 싸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시골 마을, 이장 선거, 중년 레즈비언. 이 조합에서 예상할 수 있는 서사는 배타적인 공동체와의 갈등입니다. 영화는 그 예상을 단순히 따라가지 않습니다.

이반리 주민들이 만옥에게 반응하는 방식, 그리고 선거를 통해 마을 안에서 생겨나는 균열과 연대가 영화의 실질적인 에너지를 이룹니다. 혐오를 유쾌한 웃음으로 넘어서는 방식이라는 평가가 이 영화에 반복해서 붙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만옥이 이반리를 바꾸는 건지, 이반리가 만옥을 바꾸는 건지, 영화를 보면서 그 경계가 조금씩 흐려집니다.

서울퀴어퍼레이드 개봉 연계로 더 많은 관객을 만나게 된 이 영화는, 보기 드문 농촌 중장년 퀴어 코미디라는 분류를 넘어서 누구에게나 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달라지는 주변의 풍경. 이반리 장만옥이 국내외 영화제 관객상을 연달아 받은 이유가 그 안에 있습니다. 108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이반리를 설명하거나 분석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안에서 만옥과 함께 움직입니다. 관객도 그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반리가 처음과 달라 보이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게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변화의 방식입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