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서 평론가의 극찬과 박스오피스 흥행 성적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전문가들이 "영화 역사에 남을 명작"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운 작품이, 일반 관객들에게는 외면받아 흥행 참패라는 씁쓸한 결과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간극을 좁히지 못해 개봉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영화적 가치만큼은 최고 수준인 대표적인 비운의 걸작 세 편을 소개합니다. 지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찾아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입니다.
평론가 87%의 지지율과 박스오피스 참패, <블레이드 러너 2049>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하고 라이언 고슬링과 해리슨 포드가 주연을 맡은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SF 고전으로 꼽히는 1982년 원작의 정신을 35년 만에 계승한 속편입니다. 개봉 당시 해외 유명 비평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평론가 신선도 지수 87%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평단의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향해 "근래 보기 드문 진중하고 깊이 있는 SF 영화"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평단의 뜨거운 반응과 달리 실제 극장가 흥행 성적은 참담했습니다. 제작비만 최소 1억 5,000만 달러 이상이 투입된 대작이었으나, 전 세계 총 흥행 수입은 약 2억 6,000만 달러에 그쳤습니다. 통상적으로 마케팅 비용 등을 고려한 손익분기점이 4억 달러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막대한 자금 손실을 입은 셈입니다. 메가폰을 잡았던 드니 빌뇌브 감독 역시 인터뷰를 통해 난해하고 불명확했던 마케팅 방식을 흥행 실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기도 했습니다.
일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외면한 가장 큰 이유는 대중성 부족이었습니다. 2시간 44분에 달하는 긴 상영시간과 다소 느리고 정적인 전개 방식, 그리고 1982년 전작을 보지 않은 관객에게는 지나치게 높았던 진입장벽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기획 중이던 후속 속편 제작 계획은 사실상 불투명해졌습니다. 비록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후 영화 《듄》 시리즈를 통해 대규모 대중적 흥행에 성공하며 명예를 회복했지만,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지금도 '개봉 당시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비운의 걸작'으로 끊임없이 회자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1982년 원작 역시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처참히 실패했다가 추후 SF의 전설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본 작품 또한 최근 OTT 플랫폼을 통해 재발견되면서 개봉 당시보다 현재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베니스 5관왕의 위업과 국내 관객 53만의 침묵, <오아시스>
이창동 감독이 연출하고 설경구와 문소리가 주연을 맡은 한국 영화 《오아시스》(2002)는 한국 영화사에서 예술적 성취의 정점을 찍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제5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감독상(은사자상)을 비롯해 신인배우상, 국제비평가협회상, 가톨릭언론협회상, 청년비평가상 등 무려 5개 부문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에서 거둔 이러한 성과는 당시 한국 영화계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해외 평단의 극찬과 달리, 국내 박스오피스 성적은 서울 관객 수 기준 약 53만 명에 머물며 대중적인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흥행 저조의 가장 큰 원인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파격적이고 무거운 소재에 있었습니다. 사회 부적응자인 전과자 청년과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여성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은 일반 대중이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기에는 심리적 진입장벽이 너무나 높았습니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편견을 정면으로 다루다 보니, 관객이 마주해야 하는 감정적 불편함이 컸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배우 문소리는 뇌성마비 장애인 캐릭터를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한 인간이 가진 복잡한 감정의 결어와 가감 없는 욕망까지 완벽하게 스크린에 투영해 내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세계가 인정한 명작이 국내에서 단 53만 명의 관객에게만 소비되었다는 사실은 예술성과 대중성의 괴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세월이 흘러 이 작품을 뒤늦게 접한 관람객들은 "왜 이런 명작을 이제야 알았을까" 하는 감탄을 쏟아내곤 합니다. 소재의 낯섦과 불편함을 한 꺼풀 벗겨내고 나면, 인간의 본질을 관통하는 묵직한 감정의 밀도를 경험할 수 있는 이창동 감독 최고의 숨은 명작입니다.
칸 황금종려상 수상 현장에서 야유가 터져 나온 이유, <트리 오브 라이프>
거장 테렌스 맬릭 감독이 연출하고 브래드 피트와 숀 펜이 주연을 맡은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2011)는 세계 3대 영화제 중에서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제64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미국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도 평론가 지수 85%를 기록하며 시네필들 사이에서 뜨거운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칸 영화제 공식 시사회 상영 당시, 극장 안에서 거대한 박수갈채와 날카로운 야유가 동시에 터져 나온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더 유명합니다.
영화가 이토록 극단적인 호불호 갈림길에 선 이유는 독창적이다 못해 난해한 연출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는 대중적인 상업 영화가 따르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인과관계에 따른 스토리라인)를 과감하게 거부합니다. 대신 1950년대 미국 텍사스에 사는 한 가족의 미시적인 이야기와 우주의 탄생 및 지구의 기원이라는 거시적인 이미지를 시적이고 철학적인 영상미로 교차 편집하여 보여줍니다. 이러한 실험적인 전개는 시각적 서사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관객들에게 지루함과 낯선 혼란만을 안겨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약 3,2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작품은 전 세계 흥행 수입 5,400만 달러에 그치며 흥행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특히 세계 최대 영화 시장인 북미 현지 매출은 1,300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영화를 관람한 이들은 "영상 매체가 도달할 수 있는 예술적 최정점"이라는 극찬과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혹평으로 완전히 양극화되었습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단은 전자의 예술적 가치에 손을 들어주며 황금종려상을 수여했지만, 대중의 냉정한 선택이 반영되는 박스오피스는 후자의 손을 들어준 셈입니다. 서사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라 감각과 심상을 느끼는 영화이기에, 이 작품이 본인의 취향에 맞는지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초반 30분을 시청해 보는 것입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영화의 마법에 매료될지, 혹은 채널을 돌릴지 답이 내려질 것입니다.